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어디에나 있고, 아무데도 없다 (문단 편집) ==== 작품에 대한 현재의 평가가 절대화될 수 있는가의 문제 ==== 그리고 이 사건의 이면에는 다수의 대중이 정한 선한 것/악한 것의 이분법은 절대적이며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 역시 이에 따라야 한다는 발상을 엿볼 수 있는데 [[다수결]]의 원리가 오늘날 [[민주주의]] 사회의 기본 원리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다수의 판단이 항상 옳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모든 가치 판단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반전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발상은 위험하다고 볼 수 있다 이게 왜 문제인지는 [[미술사]]의 사례를 봐도 쉽게 알 수 있다. [[나치]]가 양차대전 사이에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어떻게 [[퇴폐미술]]이라고 매도하고 박해했는지 생각해 보자. [[아돌프 히틀러]]는 이상적인 영웅의 모습을 보여주는 고전주의가 옳고 인간의 나약하거나 불안정한 모습을 표현한 현대예술가들의 작품은 퇴폐적인 쓰레기라고 비난했다. [[선민사상|게르만 민족 우월주의]]에 빠진 나치가 왜 베를린 올림픽을 최대한 웅장하게 보이려 애썼는지 생각해 보자. 그 [[영웅주의]], [[전체주의]], [[국뽕]]에 빠진 독일 대중들이 2차대전에서 어떤 광기를 드러났는지는 굳이 두번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. 역설적이게도 현대에는 히틀러가 좋아했던 근육질 영웅 조각상보다 [[다리파|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]]가 군생활 뺑이 치며 겪은 자신의 [[트라우마]]를 표현한 기괴한 그림이 더 의미 있고 숙고할 만한 내용을 담은 작품으로 여겨진다. 단순히 겉으로만 보면 키르히너 같은 '퇴폐' 예술가들의 작품은 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그림이겠지만 그 예술가들이 어떤 의도로 무슨 생각을 하며 그렸는지까지 고려하면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. 이처럼 미술사에서 시간이 흘러 악평이 호평으로 완전히 역전되는 경우는 부지기수다. 오늘 당장 다수의 대중이 악하다고 해도 미래에 관련된 내막까지 알려진 뒤에는 도리어 평가가 역전되어 예술가가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. 침묵과 무시로 일베 문제를 일관하는 대중과 다르게 직접 일베 문제에 대해 시각언어로 언급한 저 예술가의 행동이 후대에는 더 시의적절한 행위였다고 평가받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. 이런 점에서 생각해 볼 때 조각상을 파괴한 것은 조각상의 가치가 발견될 앞으로의 가능성마저 파괴해 버렸다는 점에서 한층 더 문제성이 짙은 행위로 볼 수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